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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

Grene 2025. 12. 26. 09:13

상사가 나를 아낀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 그를 참 좋아한다.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나로서는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다 보니 그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도 굉장히 많아졌다.
여행도 자주 갔고, 술은 더 자주 마셨다.
그는 가끔 내가 너를 아낀다는 말도
술의 힘을 빌려 다양한 방식으로 서툴게 한다.

언제 한 술자리에선 수많은 직원을 만났는데
나를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뭔지
독백인 양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분위기가 익으면 말하려고 했다.
아니 사실 늘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합류하기로 한 동료의 등장으로
대답할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아끼는 이유에 대한 정답지는
그가 들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내가 그의 결핍과 자유로움을 채워주고 있어서다.
일만 하다 놓친 ‘친구’라는 결핍을 채워주고,
정장 안에 갇힌 고삐 풀린 야생마를
소환하는 것은 보아하니 나만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결국 정장 안에 갇힌 관리자이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통제하려고도 하고
이를 통해 교훈도 주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나의 심기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내가 후회를 했으면 좋겠단다.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서.
이 회사에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치환이
가능했지만, 솔직히 내가 평소에 느끼는
‘현타’를 강타하는 말이었다.

그는 빠른 년생이라, 형인 듯 아닌
나이에 있어서는 모호한 위치에 있지만,
적어도 이 회사에서만큼은
부장과 고작 반년 된 사원으로
위치가 대단히 명확하다.
그 위치의 폭이 주는 현타…

나라고 처음부터 자유롭진 않았다.
나답게 살기 위해 20대 중반 이후
이것저것 했고 현재 결과적으론
모호한 나이 차가 나는, 하지만 직급으론
하늘과 땅 차이인 그의 밑에 있다.
현타를 느끼면서도 후회하진 않는다.

궁극적으로 그가 나를 ‘뭔가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나만의 자유로움 덕분인데,
자유롭게 내린 선택을 후회하란 말은 모순 같았다.

지금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한 직장에서 그처럼 일했다면
어느 ‘위치‘에 갔었을 순 있다.
그러나 그게 인생에서의 답은 아니다.

경험이 선생이란 말처럼,
나에겐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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