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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영역/일기

나에겐 화(火)가 필요하다.

Grene 2025. 6. 22. 14:45

 몇 년 전에 비전공자와 비경험자에게도
문을 열어 놓은 연극 오디션이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홀린 듯이 지원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A4 한 장짜리에 길지 않은 대사 여러 개 중
하나를 골라서 연기하는 거였는데,
나는 가장 끌렸던 '화 내는 연기'를 골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화 한 번 제대로
내보고 싶다는 그 욕망이 끌어올랐던 게.
나는 화는 커녕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힘들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디션 결과를 추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도망치듯 톡방을 빠져나왔다.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저 겁이 유별나게 많고
드러내는 걸 힘들어 했기에…
하지만 마음만은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가 가진 화(火)를 잘 분출하고 사는 것이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해보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연극 오디션장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걸 보면 말이다.
이 화를 해결해 줄 그 열쇠는
그 오디션장 안이든 연기 연습실이든
이 근처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논현에 있는 연기 학원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수업 등 거쳐
현재는 6개월 넘게 좋은 선생님 밑에서
나를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표현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 하는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우고 있고,
힘들지만 화(火)를 내는 연습을 통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를 하고 있다.

내 사주엔 화(火)가 부족하다.
아니 하나도 없다.
물과 목이 지배하는 사준데,
내 안의 화(火)를 적절히 분출시키는 것이야말로
내 사주에 부족한, 아니 없는 화(火)를 보강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데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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