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불편한 속옷을 입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은 나만 아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굳이 얘기하진 않고 있다.
하지만, 나의 행동거지로
짐작해 본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쟤 분명 불편한 속옷을 입고 있어.."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 혹은 드러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선 결코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만 아는 이 불편함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마치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심지어는 스스로도 속여가면서 말이다.
나에게도 불편한 속옷을 벗어던진
자유로웠던 순간들도 있다.
홍콩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떠나기 직전에
인도네시아 친구 앞에서 말이다.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내가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 혹은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 말, 행동을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서만 드러낸다는 게...
그 이유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나는 판단하지 않을 테니까
해봤자 한 번 보고 말거나 앞으로 보지 않을 사이니까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홍콩 여행을 혼자 다녀오고,
호주에서 인턴십을 하고 돌아오면서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
'자유로움'이란, 누군가 의식하지 않고
나 다울 수 있는 상태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나를 판단하지 않는,
불편함을 드러내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자유로운' 서구 문화권인 홍콩과 호주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움을 만끽했고 정말 행복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나는 한국에서 불편한 속옷을
벗어던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불편함은 나만의 것이기에.
무엇보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불편한 속옷을 입고 있소!"
라고 광고하는 순간부터는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다채로운 단어는 소멸될 것이고,
'불편한 속옷을 입은 나'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불편함을 고백하는 것은
불편감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난 이 불편감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 불편한 속옷이 편해지고
적응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