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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본능에 대하여 (그때 문동은 아니었으면 너였어..)

Grene 2026. 2. 19. 08:43

 '생존 본능'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살기 위한 본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좀 더 길게 사전적인 의미로 말해보자면 이는,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향성'이다.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생존 본능이 있다는 사실
반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갓난아이의 악력은 부모의 손가락에
수 분간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한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부모의 정성스러운
돌봄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동물적 생존 본능이
이 악력이 아닐까 싶다.
부모의 돌봄이 필요하기에 살기 위해서
부모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주 원초적인 힘.
 
아이에게 물리적으로, 물질적인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들이 충족되면
이 원초적인 생존 본능의 힘은 잃게 되고,
사회적인 동물 특성에 맞게 야생과도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른 형태의
'생존 본능'이 탑재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힘에
굴종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살기 위해서 추악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단지, 살기 위해서 말이다.
 
한 학교에 두 절친한 친구가 있다.
그 둘에 한 명이 일진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절친한 나머지 한 명은 일진을 향해 맞서기보다
일진 편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는 힘의 논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다음 표적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생존 본능'이 깔려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최혜정이 본인과 어울리지도 않는 박연진 패거리에서
문동은을 괴롭히기에 가담한 이유도
생존 본능의 논리로 본다면 합당한 선택이었다.
이는 그 유명한 대사가 이를 입증해 준다.
"그때 문동은 아니었으면 너였어"
다만 그 선택이 추악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우리는 이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TV 너머에서 보는 사람들은 플레이어들의
추잡한 행동을 보고 손가락을 쉽게 겨눌지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한' 게임을 한 자들에겐
그저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의한
행동을 한 것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 '잘 살고자'하는
이 생존 본능이 나를 서글프게 할 때가 너무 많다.
누군가의 생존 본능이 발휘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나의 생존 본능이 발휘되는 순간.. 모든 것이 괴롭다.
부모님의 생존 본능을 지켜봤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의 생존 본능 반응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목도했다.

우리는 이 복잡한 사회라는 틀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추악해 보기도 했고,
처절해 본 적도 있고, 굴욕을 견뎌보기도 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이 모든 사실은 나를 서글프게 만들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 또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